2018. 12. 6. 22:45
하나님의교회 엘로힘하나님이신 어머니하나님


하나님의 복수명사 '엘로힘(אֱלֹהִים)'


구약성경 히브리어 성경에는
 ‘하나님’이 ‘엘로힘’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로힘'은 하나님의 복수명사로 
‘하나님들’로 해석이 됩니다.

 구약성경에 2500회 이상이나 등장하고 있는 '엘로힘'

이는 하나님은 한분이 아니라 '두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엘로힘하나님은 누구일까요?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남자여자



이는 남성적 형상의 하나님여성적 형상의 하나님께서
 존재하심을 성경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남성적 형상의 하나님을 우리는 아버지하나님이라 불렀습니다.


그렇다면 여성적 형상의 하나님을 우리는 누구라 불러야할까요?
당연히 어머니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분명 우리 영혼의 부모님이신 아버지하나님과
 어머니하나님께서 계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엘로힘하나님이신 어머니하나님을 영접하여 
구원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푸른별님
2017. 10. 22. 22:46

하나님의 교회 월간지 '엘로히스트'

<외국어 한마디 배워봅시다!>



월간'엘로히스트'는 엘로힘 하나님이신 아버지 하나님어머니 하나님

사모하는 영혼들이 전하는 감동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엘로히스트 가장 뒷장 <외국어 한마디 배워봅시다> 

지난 5월호에 실린 외국어 한마디를 함께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서 당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영어    Heavenly Father and Mother are waiting for you.

                        헤븐리      파더    앤     마더     아    웨이딩   포  유


      

            독어    Himmelsvater und Himmelsmutter warten jetzt auf Sie.

                        힘멜스파터     운트     힘멜스무터      바르텐 예츠트 아우프



       스폐인어    El Padre y la Madre celestials lo esperan.

                      엘 빠드레 이 라 마드레 썰레스띠알레스 로 에스빼란



    이탈리아어    Il Padre e la Madre celesti ti aspettano.

                         일 빠드레 에 라 마드레 챌레스띠 띠 아스뺃따노



    네덜란드어    Hemelse Vader en Moeder zijn op u aan het wachten.

                             헤멀스    파더   엔     무더    자인 옵  유  안   헷    와흐턴



       필리핀어    Ang Makalangit na Ama at Ina ay naghihintay sa iyo.

                            앙     마깔랑잇    나  아마 앗 이나 아이 낙히힌따이   사 이요


  

 인도네시아어    Bapa dan Ibu Sorgawi menunggu anda.

                           바빠   단  아브 소르가위      므눙구     안다




하늘 아버지 하늘 어머니께서 애타게 찾고 있는 우리 형제,자매가 있는곳으로

부지런히 달려가는 우리가 되어요~!



우리는 엘로힘 하나님을 전하는 '엘로히스트' 입니다!^-^







Posted by 푸른별님
2017. 8. 22. 22:28

하나님의 교회

엘로힘과 어머니 하나님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아버지 하나님만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선지자들에 의해 기록된 구약성경은

하나님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요?



하나님은 아버지뿐이라는 세상의 상식에 따르면, 당연히 단수로 표현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놀럽게도 원어 성경은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대부분 '엘로힘'이라는

수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약 2500번이나 '엘로힘'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약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는데, 히브리어로 '하나님, 신'을 단수로 표현할 때에는

'엘' 또는 '엘로아흐'가 사용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해 약 2500번 사용되고 있는

'엘로힘'이런 단수형이 아니라 복수형입니다.



'엘로힘'은 문자적으로 '하나님들'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책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목적으로 기록된 성경에 '하나님'이란 단어가 약 2500번이나

복수형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이는 우리를 구원하실 하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 한 분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우리'라는 복수형으로 표현했습니다.



창 1:26 - 하나님(엘로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사람을 만들고...





사람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엘로힘)이 아버지 하나님뿐이라면, 당연히

"나의 형상을 따라 나의 모양대로 내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말씀하셨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엘로힘)께서는 '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뜻하는 '엘로힘'이라는 단어가 실제로 복수의 하나님을 가리킨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라고 말씀하신 '엘로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창 1:27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리고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누가 창조되었습니까?



남자와 여자가 창조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남성적 형상과 여성적 형상으로 존재하신다는 뜻입니다.



인류는 하나님을 남성적 형상의 하나님으로만 이해하고 오랫동안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그렇다면 여성적 형상의 하나님은 누구라고 불러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어머니'입니다.



다시 말해 아버지 하나님뿐만 아니라 어머니 하나님도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실 하나님은 엘로힘 즉

아버지 하나님 어머니 하나님입니다.









Posted by 푸른별님
2017. 7. 5. 23:28

 하나님의 교회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2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가르쳐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알려주신 것이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 계신다는 뜻일까요?


문자적으로 아버지란 자녀를 가진 남자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 어떤 남자가 '아버지'라고 불리기 위해서는 그에게 반드시 자녀가 있어야 합니다.

자녀가 없다면 결코 '아버지'라고 불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버지'라고 불리신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에게 자녀가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 하고 있습니다.


고후 6:17~18 -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전능하신 주 곧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는 하나님께 어떤 사람이 된다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자녀 즉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버지'가 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홀로 자녀를 낳을 수 있습니까?

상의 모든 가족을 생각해 보십시오.

자녀가 있다면 반드시 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존재가 없다면 자녀도 있을 수 없고 자녀를 가진 아버지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아버지'라는 호칭은 반드시 어머니가 있을 때에만 생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호칭은 결국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어머니 하나님께서 계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늘에 우리 어머니께서 계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갈 4:26 -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여기서 '위'는 하늘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늘에 누가 계신다고 하였습니까?

우리 어머니께서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늘에 아버지 하나님뿐만 아니라 어머니 하나님도 계심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육신의 가족에 아버지와 아들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도 있는 것처럼

영의 가족에도 아버지 하나님과 자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하나님도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되 성경의 가르침대로 아버지 하나님뿐만 아니라

어머니 하나님도 믿어야 합니다.


 어머니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교회로 오세요









Posted by 푸른별님
2017. 6. 7. 22:47
 

우리 영혼의 고향 천국에 돌아가는 방법

유월절 침례





사람이 죽으면 왜 돌아가셨다고 할까요?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한다.

어디로 돌아갈까?



1.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할까?



<사전>  돌아가다 [ ...에/에게, ...으로]

    원래의 있던 곳으로 다시 가거나 다시 그 상태가 되다.



우리원래 있던 곳

어디일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혼에 대해 알아야 한다.



2.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창세기 2장 7절

"여호와 하나님이 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사람은 흙인 육체와 생기인 영혼

결합으로 만들어졌다.



살아 있는 사람은

육체영혼이 결합된 상태다.



3.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전도서 12장 7절

"은 여전히 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사람이 죽으면 흙(육체)은 땅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신(spirit, 영혼, 생기)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우리의 영혼은

원래 하나님과 함께 있었던 천사였다.



4. 우리 영혼의 고향하늘이다.


히브리서 11장 13~16절

"또 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이제는 더 나은 본향(고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우리는 하늘에서

이 땅에 왔다.



왜 이 땅에 왔을까?



누가복음 19장 10절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9장 13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부르러(찾으러)왔노라"



우리는 하늘에서 를 짓고

이 땅에 내려왔다.



5. 다시 하늘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에베소서 1장 7절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마태복음 26장 19절~28절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예수께서 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다시 하늘로 돌아가려면

유월절을 지켜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



6. 어떻게 유월절을 지킬 수 있을까?



마태복음 28장 19절~20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침례를 주고 -> 가르쳐 -> 지키게 하라



베드로전서 3장 21절

"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

세례(침례)라"



마가복음 16장 16절

"믿고 세레(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성경의 가르침대로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는

하나님의 교회에 오셔서 '침례 유월절' 을 통해

우리 영혼의 고향 천국에 돌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푸른별님
2017. 6. 2. 23:27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언제 교회 가세요?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명하신 예배일이 있습니다.

과연 언제일까요?


학생이라면 학교 가는 날을 알고

 직장인이라면 직장 가는 날을 알듯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예배드리는 날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 언제일까요?



성경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이

일곱째날 안식일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하셨을까요?


출애굽기 31장 13절

"...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표징(sign)입니다.


일곱째 날 안식일은 무슨 요일일까요?



국어사전

일요일 - 한주의 첫째가 되는 날

토요일 - 칠요일의 제일 끝 날. 곧 일요일로부터 일곱째 되는 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곱째 날 안식일토요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예수님 십자가 이후에도 사도들은

예수님의 본을 따라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본을 따라

우리도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면 어떻게 될까요?




천국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안식일을 지켜서 천국에 들어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푸른별님
2017. 5. 26. 23:22

하피모는 모르는 하나님의교회의 정통성


하나님의교회 역사는 기독교회사와 맥락을 같이한다.
기독교회사가 곧 하나님의교회 역사임을 2000년 전 예수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마가복음 1:1~10)


기독교의 시작점은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고부터다. 당시 이스라엘은 유대교를 믿었다. 유대교는 그들 고유의 신앙으로 뿌리가 깊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며 구원자라고 믿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기독교는 신흥종교였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이단으로 치부하며 배척했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았다. 유대인들의 섣부른 판단으로는 예수님만 없으면 그리스도교는 자연히 몰락할 것이라고 믿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사형을 하루 앞둔 날 마가의 다락방으로 열두 제자를 부르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새 언약의 법을 세워주셨다. 이날이 바로 우리들이 최후의 만찬으로 알고 있는 ‘유월절’이다.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7, 19~20)


유월절 다음 날 예수님께서는 로마와 유대인들의 결탁에 의해 십자가형을 받으셨다. 유대인들은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수장의 죽음으로 무리들은 당연히 흩어질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의외의 결과를 낳았다. 예수님의 죽음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열정으로 불타게 했고 결국 120명의 사도들은 유럽과 아시아 각지로 흩어졌다.


본격적인 초대교회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실질적인 교회가 세워진 것은 아니었다. 초대교회가 건물이라는 형태를 갖춘 것은 AD 100년이 넘어서다. 그전에는 House-church(가정예배) 형태로 명맥을 유지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로마의 박해 때문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수중에 있었다. 로마는 태양신을 섬기던 다신교 국가로, 최고의 권위가 황제였다. 로마 시민은 누구든 국가의 모든 일에 복종해야 했다. 물론 기독교인들 역시 국가에 충성했지만 한 가지, 신앙을 지키는 데 있어서는 로마 황제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눈엣가시였다.


더욱이 로마 제국은 국가 통합의 목적으로 여러 신들과 함께 황제에게도 예배하는 종교가 성행했는데, 이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은 국가에 충성하지 못한 자들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결국 로마의 황제들은 기독교 탄압정책을 펼쳐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했다. 초대교회는 대체로 House-church를 유지하며 그들의 믿음을 지켰다. 그렇다고 교회 이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에 있는 교회로 편지를 보내며 교회 명칭을 언급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고린도전서 1:2)


로마의 탄압을 피해 가정으로 전전하며 예배를 드렸던 초대 기독교, 그 이름이 바로 하나님의교회다. 즉, 기독교의 역사는 바로 하나님의교회의 역사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기독교는 로마의 눈을 피해 믿음을 지켰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에 대한 로마의 탄압은 갈수록 거세졌다.


폭군으로 유명한 네로 황제(재위 기간 54~68년)는 무고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학살했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해가 지면 등불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재위 기간 284~305년) 황제 때에는 칙령을 반포해 기독교인들의 예배소를 헐고, 성경을 불태우며 기독교인들을 옥에 가두었다. 이 시기 기독교인들은 채찍질을 당한 뒤 피에 굶주린 맹수의 밥으로 던져지거나 화형을 당하고, 사지가 찢기는 등 끔찍하고 야만적으로 죽임을 당했다. 시신은 방치되었다가 불에 태워지거나 강에 던져졌다. 이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로마 제국은 정부의 위력으로 기독교를 박멸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박해를 피해 카타콤(지하무덤)에까지 숨어 들어가 예배를 드리며 믿음을 지켰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로마의 탄압을 피해 예배드렸던 장소, 카타콤.
  초대교회 성도들이 로마의 탄압을 피해 예배드렸던 장소, 카타콤.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로마가 내놓은 종교정책은 ‘종교의 자유’였다. 로마는 종교적 관용책을 펼치며 타 종교에 대해 묵인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단지 로마의 정치성향일 뿐이었다. 통치 차원에서 로마는 타 종교에 대한 관용을 베풀었으나 언제든지 필요하면 특정 신앙을 박해하거나 탄압할 수 있었다. 그 대상이 바로 기독교였다.


갈수록 거세지는 탄압 가운데서도 기독교는 로마제국 전체로 전파됐다. 처음에는 평민이나 노예 중심으로 퍼져나갔으나 점차 상류층에서도 하나 둘 기독교를 믿는 무리가 생겨났다. 상류층의 입교는 기독교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이 무렵부터 신도들이 모이는 곳에는 교회가 세워졌다. 3세기 말 무렵에는 전체 로마 인구 중 10%가 기독교인이었다. 놀라운 발전이었다. 박해를 견딘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더없는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이와 함께 기독교를 심하게 박해하던 갈레리우스는 311년 임종 직전 기독교를 인정하는 칙령에 서명했다. 기독교의 승리였다. 이보다 더 큰 기쁨은 다음 해에 찾아왔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밀라노에서 내린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했다. "모든 기독교도는 신앙의 자유가 있다." 이 짧은 문장은 기독교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비로소 기독교는 347년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이르러 국교로 인정받았다. 탄압의 세월을 보내고 찾아온 눈물 겨운 결실이라 볼 수 있지만 사실 이 역사는 기독교의 타락을 가져왔다. 다시 말해 기독교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교리가 이교도화돼버린 것이다.


이 무렵 하나님의교회 즉 기독교는 서서히 파벌이 생겼다. 성경대로 행해야 한다는 동아시아 교회와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묵인해도 된다는 로마교회였다. 결국 로마교회는 인본주의라는 독단적인 길을 가게 됐다. 반면 동아시아 교회들은 성경을 위주로 하는 신본주의 사상을 고수했다. 두 지역 교회의 교리 논쟁은 AD 155년 유월절 논쟁으로 촉발됐다. 로마교회 지도자인 아니케터스와 동아시아에 있던 서머나교회 감독인 폴리카르푸스(폴리갑)가 서로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각자 유월절을 지키기로 했다.


당시 로마교회는 성경대로 유월절을 지키지 않고 있었다. 성력 1월 14일 저녁에 행하던 성찬식을 부활절에 같이 실행했다. 이런 로마교회의 새로운 관습은 성경대로 행하던 다른 지역 교회들과 충돌을 일으켰다. 이후 197년 로마교회 감독이었던 빅터가 ‘도미닉의 규칙’이라는 법을 만들어 모든 기독교에 유월절 성찬식을 부활절에 하도록 강요했다.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들은 빅터의 결정에 따랐지만 동아시아 교회들은 모두 거부했다. 동아시아 교회 중 에베소교회의 감독 폴리크라테스는 빅터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는 편지에서 사도 빌립, 사도 요한을 비롯한 여러 순교자들이 1월 14일을 유월절로 지켰으며 8대 감독인 자신도 전임 감독의 가르침대로 유월절을 지킨다고 강조했다.


결국 유월절은 AD 325년에 폐지됐다. 두 교리 간의 역법(曆法) 차이로 발생했다고는 하지만 이 또한 교리의 이교도화가 가져온 산물이었다. 이 기간에 급격하게 로마교회의 교리는 변질됐다. AD 321년 일요일 휴업령으로 성경의 안식일을 버렸고, AD 354년 크리스마스를 유입시켰으며, AD 568년 십자가상을 도입했다.


교리의 변화와 함께 논쟁이 거세질 즈음 군사적 약화와 내부적 혼란을 겪고 있던 서로마 제국으로 게르만계의 여러 부족이 대규모로 이동했다. 4세기 말 훈족의 서진(西進)에 자극을 받은 게르만민족은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전후하여 제국 각지에 정착하면서 여러 부족왕국을 건설했다. 이 시기 비록 서로마제국은 멸망했으나 로마교회는 건재했다.


콘스탄티누스가 비잔틴으로 수도를 옮긴 뒤 서로마가 멸망하기까지인 약 100년 동안 로마교회는 나름대로 살 방법을 모색했다. 게르만민족의 대이동 후 여러 미개한 부족들은 왕국의 번영을 위해 로마교회와 손을 잡았다. 그중 재빨리 로마교회로 개종한 프랑크왕국은 처음부터 로마교회를 옹호하므로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로마교회에 정면으로 반대하던 나라 중 세 나라(헤룰리, 반달, 동고트)는 로마감독의 농간에 차례차례 멸망당하고 말았다.


성경적 진리를 버리고 이교도의 길을 걷고 있던 로마교회는 다른 게르만민족들을 포교할 목적으로 우상을 세우고, 교회를 웅장하게 꾸미기 시작하며, 타 민족의 풍습을 더욱 과감히 받아들였다. 각 지역의 문화적 특색처럼 등장하는 교회지붕, 스테인드글라스, 촛불, 성상숭배 등을 들 수 있다.


로마교회의 위상은 이때부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급기야 506년에는 동로마 황제까지 정책적으로 로마교회를 지지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로마교회의 감독을 교회의 우두머리라는 칙령을 반포하는 한편 590년 ‘교황’이라는 칭호를 주었다. 천주교황의 탄생이었다. 기독교의 세속화는 결국 종교적 괴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시대는 로마카톨릭이 지배하는 종교 암흑시대로 치달았다.


AD 538년 교황은 적대 세력이었던 아리우스파의 동고트를 정복함으로써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게 됐다. 그 종착점은 1798년 프랑스 혁명군이 교황 피우스 6세를 발렌스 성으로 유배시킨 때까지다. 이제 참다운 기독교인 하나님의교회는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초대교회 사도들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도 사라진 후 교회는 교황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이와 함께 로마카톨릭의 부패는 갈수록 심각해졌다. 교황직의 매매와 세속적 권력, 축첩, 간음, 사치, 정적 살해 등의 비리는 특정한 때, 특정 교황에게만 해당된 것이 아니었다. 교황과 성직자들의 음란한 생활은 속담과 풍자로 민중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급기야 교황 레오 3세 때는 죄에 대한 벌을 사면해준다는 조건으로 금전이나 재물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면죄부’가 그것이다. 800년경에 판매가 시작된 면죄부는 15세기에 발행량이 급격히 늘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이처럼 천주교가 부패의 일로를 걷고 있을 무렵, 독일의 광산 노동자에게 한 아들이 태어났다. 신학 교수를 거쳐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프로테스탄트의 사상을 만든 사람, 바로 마르틴 루터다.


루터는 어느 날 수도사인 존 테첼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동전이 그릇에 떨어져 땡그랑 소리를 내는 순간 영혼은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루터는 테첼의 면죄부 판매에 분개했다.


로마교회의 타락을 보며 실망했던 그는 당시 대주교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믿는 자의 전 생애가 회개 과정이 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라며 반박문을 보내고 교회의 문에 95개조에 달하는 긴 서한을 내걸었다. 비로소 종교개혁의 시작이었다.


그 후 프랑스의 칼뱅, 스위스의 츠빙글리 등 다양한 종교 개혁가들이 등장했다. 천주교에 뿌리를 두고 있던 이들은 종교개혁과 아울러 천주교에 대항하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었다. 이것이 오늘날의 개신교다. 천주교에서 분리되어 발생했다고는 하지만 교리적 측면에서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


대중들은 천주교나 개신교나 하나님을 믿는 곳이라는 인식의 틀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정통 기독교는 천주교나 개신교가 아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새 언약 유월절을 세워주시며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리라’ 하신 교회는 바로 하나님의교회다. 사도들도 다녔으며 그의 제자들도 죽음을 불사하고 지켰던 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 정통성을 고수하며 초대교회 사도들의 믿음을 지키는 그 하나님의교회가 1964년 안상홍님에 의해 복권됐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7)


인류가 바라는 구원을 주시기 위해 두 번째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그로 말미암아 2000년 전 사라졌던 하나님의교회가 수복된 것이다. 2000년의 세월 속에 수많은 종교가 생겨나고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도 생겨나며 사라지고 있다. 종교의 홍수 속에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정통 기독교를 만나고 싶다면 처음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했던 새 언약 유월절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 십자가 운명 이후 AD 325년 폐지되므로 종교인의 마음에서 사라졌던 유월절. 그 유월절 진리를 가지고 있는 정통기독교가 바로 하나님의교회다.



                                                                                                    < 출처 : 패스티브 닷컴 >





Posted by 푸른별님
2017. 5. 23. 23:26

하나님의 교회

선한 목자의 가르침

         

이스라엘 민족에게 ‘목자’는 익숙한 직업이었다. 목자는 양에게 먹이를 제공해주고 도둑이나 짐승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을 주로 한다. 사나운 맹수의 공격에 대비하여 손에는 항상 지팡이와 막대기를 지니고 다닌다. 이스라엘 제2대 왕이었던 다윗은 소년시절, 사자가 새끼 양을 물어갔을 때 몽둥이를 가지고 뒤따라가 사자로부터 양을 구해냈다(사무엘상 17:34~35). 자칫 목숨을 잃을 뻔한 위험한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좋은 목자는 양들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기도 한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한복음 10:11)


이천 년 전, 목자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이루셔야 할 중요한 일이 있었다. 사망 죄를 지은 인생들을 대신하여 당신의 목숨을 내어주는 일이다(로마서 6:23). 양으로 비유된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운명하심으로 사망이라는 형벌을 면제받게 되었다(에베소서 1:7).


우리들의 죗값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목자이신 예수님께 가해진 채찍질은 너무 가혹했다. 채찍에는 뾰족한 동물의 뼈와 쇳조각, 유리조각이 고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로마 군병들이 장시간 예수님의 온몸을 가리지 않고 채찍을 내리쳤으니, 예수님의 살은 찢어져 피가 터지고 근육까지 너덜너덜 찢겨져 나갔을 것이다. 게다가 예수님께서 짊어지신 십자가의 무게는 무려 70kg 정도라고 한다. 이미 감당할 수 없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 체력이 바닥난 예수님은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며 양들을 위해 묵묵히 목숨을 버리셨다.


양들의 특징은 잘 속고, 잘 넘어지며, 시력도 안 좋고, 방어력도 없다. 강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양은 그야말로 나약한 존재다. 다리가 짧아 도망하는 일마저 쉽지 않다. 더욱이 뛰는 속도까지 느려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잡아 먹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렇듯 목자 없이는 스스로의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존재가 양인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예수님의 도움 없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아무리 유명하다는 신학박사라도, 경력이 화려한 목사라도, 돈 많은 부자나, 가난한 자도 모두가 예수님의 가르침 없이는 천국에 갈 수 없다. 목자가 제시하는 길대로 순종하는 자만이 천국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15~20)


십자가 고난을 직전에 앞둔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지키기를 참으로 간절히 바랐다”고 말씀하시며 유월절의 떡이 십자가에서 찢길 당신의 살을 의미하고, 유월절의 포도주가 양들을 위해 흘려야 할 당신의 피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지키라 하신 유월절을 비난하고 악평했지만,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믿었던 사도들은 그 가르침대로 행했다. 사도 바울은 새 언약 유월절이 세상 끝날까지 지켜져야 하는 중요한 절기라고 강조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1:23~26)


이천 년이 지난 오늘날, 세계 곳곳에는 예수님을 신앙하는 교회들이 난립하고 있다. 그런데 새 언약 유월절에 대한 기성교단의 반응은 의아하다. 어찌된 영문인지 예수님의 가르침이 이단(異端)시 되어 있고, 새 언약 유월절을 대하는 목사들의 태도는 무례하다.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요한복음 10:12)


공교롭게도 세상에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배반하는 삯군 목자도 존재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스르고 십자가의 희생을 헛되이 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새 언약 유월절 지키길 간절히 원했다”는 예수님의 음성을 당초 없는 것처럼 여긴다.


우리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노라”고 하신 선한 목자의 유언과 가르침을 제대로 따라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의 영혼이 풍성한 꼴을 먹게 되고, 목자의 따뜻한 품에서 위로를 받으며 천국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1. ‘목자’, 라이프성경사전
2. ‘예수가 짊어진 십자가는 몇 kg이었을까’, 중앙일보


                                                                                                       <출처 : 패스티브 닷컴>




Posted by 푸른별님
2017. 5. 20. 23:47

하나님의 교회 '엘로힘 하나님'

하나님을 왜 한 분이라고 했을까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사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다 알고 있을 정도로 보편화된 상식이다. 유대교인이나 기독교인이나 다 같이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하나님이 왜 한 분인가?” 하고 질문하면 단순히 하나님은 한 분뿐이라고 주장할 뿐 심도 있게 생각해본 듯한 답변을 들어본 적은 없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을 한 분이라고 했을까. 그 진실과 진리는 성경에서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성경에서 그 해답을 찾기 전에 우선 짚어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하나님은 한 분이다"라는 말씀의 의미가 하나님이 정말 하나의 모습, 한 형상이기 때문에 한 분이라고 했을까 하는 것이다. 과연 아버지 하나님만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지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옛적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해내신 분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다. 애굽에도 많은 신이 있었지만 노예 신분에 허덕이고 있던 그들에게 자유와 구원을 베풀어주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었다.


네가 있기 전 하나님이 사람을 세상에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날을 상고하여 보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이런 큰 일이 있었느냐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었느냐 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처럼 듣고 생존하였었느냐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이것을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명기 4:32~35)


많은 신들이 있었지만 그 어떤 신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질고의 땅에서 구해내지 못했다. 그들을 구원해주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뿐이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그들의 신으로 경배하고 섬겼던 것이다. 다시 말해, 유일신(唯一神) 사상이란 다른 수많은 잡신과 우상들을 배격하고 하나님만을 믿는 데서 비롯된 것이지, 결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수효를 헤아리는 개념이 포함된 것이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러므로 주는 광대하시니 이는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참 신이 없음이니이다 (사무엘하 7:22)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해서 우리는 우상이라는 것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니며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늘과 땅에 많은 신과 주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한 분뿐이십니다. 그분은 만물을 창조하셨고 우리도 그분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또 우리의 주님도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그분을 통해서 만물이 창조되었고 우리도 그분을 통해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의성경, 고린도전서 8:4~6)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 ‘한 분’이라는 개념 속에 깊이 매몰되어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아버지’ 하나님은 한 분이다. 그러나 성경은 ‘아버지 하나님’이라 부르는 남성적인 형상을 지닌 하나님 외에도 여성적인 형상의 하나님에 대해 분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6~27)


창조의 역사 속에 사람을 창조하시는 장면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히브리어 원어성경에 ‘엘로힘’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엘로힘은 복수명사로서 ‘하나님들’이라는 뜻이다. 엘로힘이라는 단어는 구약 성경 39권에 걸쳐 2500회 이상 등장한다.


또한 이 말씀 가운데 ‘우리’라는 표현도 주목해보자. 하나님이 한 분이 아니다. 무엇보다 ‘우리’라는 하나님, 정확하게 표현하면 ‘하나님들’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즉, 남성적 형상의 하나님과 여성적 형상의 하나님 두 분이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남성적 형상의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 여성적 형상의 하나님은 당연히 어머니 하나님인 것이다. 창세기 1장 외에도 ‘우리’라는 표현은 성경 곳곳에 등장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게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11:7)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 6:8)


‘한 분’이라는 말씀은 아버지 하나님만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많은 신 중에서 참 신은 하나님뿐임을 강조하신 것이다. 많은 신들 가운데 참 신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주실 참 신, 하나님(들)은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뿐이다.


                                                                                                   < 출처 : 패스티브 닷컴 >




Posted by 푸른별님
2017. 5. 16. 23:31

하나님의 교회

승천일과 오순절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복음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다. 책은 예수님의 승천 그리고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시작으로 전개된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복음을 전파했다. 한때 예수님을 배신하고 떠나갔던 그들이 다시금 열정을 다해 예수님의 이름을 전파했던 이유는 사도행전 첫 장을 열면 짐작할 수 있다.



승천일

예수님께서는 무교절에 십자가에 운명하셨다가 안식 후 첫날에 부활하셨다. 그리고 부활하신 지 40일 만에 사도들과 함께한 감람산에서 승천하셨다.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부활하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사도행전 1:2~9)


승천일은 바로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승천은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으로 보이신 본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의 최종적인 소망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40일 동안 사도들의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하시며 천국복음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사도들은 예수님의 마지막 교육을 통해 믿음을 곧추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오순절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지 40일 만에 승천하시고,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성도들은 120명이었다. 이후 성도들은 10일 동안 간절히 성령을 간구하는 기도를 드린 끝에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령을 받게 된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기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2:1~4)


오순절은 바로 성령 강림을 기념하는 날이다. 부활절로부터 정확히 50일째 되는 날이다. 2천 년 전 이날, 사도들은 성령을 받고 천하 각국 사람들에게 담대히 예수님을 전파해 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한다. 하루에도 3천 명, 5천 명씩 많은 영혼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교회에 큰 부흥이 일어나고, 방언의 능력으로 이방인들에게까지 복음이 전파되면서 그리스도교는 일대 전기를 맞는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매년 유월절과 무교절, 부활절(무교절 후 안식 후 첫날)을 지켰으며, 부활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에는 그리스도의 성령 강림을 기념하는 오순절을 지켰다.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안식 후 첫날(부활절)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치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행선하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사도행전 20:16)


사도행전 20장에 나타난 절기의 배열을 보면, 맨 먼저 무교절이 기록되었고, 다음에는 부활절이 기록되었고, 다음에는 오순절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의 절기를 지켰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또 다른 기록을 보자.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유하려 함은 (고린도전서 16:8)


사도 바울이 이방지역인 에베소에 체류하면서 오순절까지는 그곳에 머물러 있겠다고 한 내용을 보더라도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이방지역에서도 오순절을 지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구약시대의 승천일과 오순절

이러한 신약의 역사는 구약시대부터 예언되어 있었던 것이다. 유월절을 통해 이집트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교절에 홍해를 건너 상륙한 날(안식일 이튿날)로부터 40일째 되는 3월 1일, 시내산 앞에 장막을 쳤다. 그리고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을 뵈었다. 이는 장차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것을 예표로써 보여주신 것이다.


10일 뒤에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다시 시내산에 올랐는데, 이날이 칠칠절, 신약의 명칭으로는 오순절이다. 이날은 홍해를 건너 상륙한 날로부터 정확하게 50일째 되는 날이었다.


안식일 이튿날(초실절)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제 칠 안식일 이튿날(다음 날)까지 합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 (레위기 23:15~16)


칠칠절은 초실절(신약의 부활절로, 무교절 후 안식일 이튿날)로부터 7 안식일 다음 날에 지키는 절기로서, ‘안식일을 일곱 번 지나서 지키는 절기’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49일째 되는 다음 날이 되며, 50일 즉 10일을 다섯 차례 계수하는 의미에서 오순절(五旬節)이라 이름한 것이다.


                                                                                                     <출처 : 패스티브 닷컴>





Posted by 푸른별님